직원이야기
이리 오너라 먹고 놀자
요양보호사 소 명 순
비가 개 인 하늘이 유난히도 맑다. 요양원 건물 옥상에는 오늘도 수많은 면 기저귀가 불어오는 실바람에 하늘거린다. 한가로이 나르던 고추잠자리는 눈부시게 하얀 면 기저귀의 한 자락에 잠시 앉아서 깨끗한 향기에 심취하려는지 날개를 쉬고 있다. 세탁실의 유일한 매스컴 매체인 라디오에서는 각계각층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의 사연들이 그려지고, 이어서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때 이 평온한 분위기의 리듬을 깨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내 속옷 누가 다 가져갔어?”
하며 들어오시는 분은 세탁실 단골손님 남ㅇㅇ어르신이시다. 멀쩡히 잘 있을게 뻔한 속옷이 없어졌다고 하시는걸 보니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으신 모양이다. 차 한 잔 마실 여유도 없었던 위생실 선생님들은 핑계 김에 커피를 타서 함께 마시며 어르신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들어 드리고 다독인다. 위생실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 행복한 어르신은 이내 못 이기는 듯 다소곳해 지셨다. 다 마신 커피 잔이 채 식기도 전에 생활실에서 어르신들의 목욕을 마친 의복 세탁물이 들어온다. 또다시 위생팀이 분주 해진다. 옷가지 하나 양말 한 짝도 내 부모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실오라기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게 위생실 선생님들의 철학이다. 설립63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요양원은 어르신들의 피부건강과 자원절약 차원에서 면 기저귀 사용을 고수하고 있는데 봉사자님들의 도움이 큰 보탬이 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60여명의 요양원 어르신들의 의복과 면 기저귀의 청결을 담당하는 위생팀의 시간은 늘 분주하다. 세탁물의 묵은 때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의 아픈 마음까지도 속 시원히 세탁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란다. 특히 위생실 관리장님께서는 전직 양재 경험을 바탕으로 헤진 의복이나 단추 또는 지퍼 수선까지 척척 해드려서 어르신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우리요양원의 좌우명인 어르신 중심케어와 항상 기뻐하라는 하느님과 성모 마리아의 사랑의 가르침에 대한 실천을 보는 듯하다.
또다시 위생실 단골손님 어르신의 발자국 소리와 함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이리 오너라 먹고 놀자~ 이리 오너라 먹고 놀자~’라는 구절만 주구장창 뽑아내신다. 얼마 전 노래교실 프로그램에서 배운 노래 사랑가중 한 소절인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를 어르신 취향에 맞게 습관처럼 부르는 것뿐이지만 얼마나 평화스럽고 행복한 목소리인지 모른다.
어르신의 나이가 여든이면 어떻고 아흔이면 어떠한가? 그 어르신의 노랫말처럼, 언제나 건강하셔서 드실 것 마음껏 드시고 즐기시며 편안하게 여생을 마치시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쌘뽈 요양원의 직원들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노인복지 시설의 복지인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저마다 자신의 분야에서 어르신을 돌봐 드리는 우리들도 젊음이라는 시간은 영원한 게 아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어르신들처럼 또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네의 하루는 더더욱 값지고 애틋하게 흘러간다.
마른 기저귀 걷을 시간이 되었다. 위생팀에서는 손과 발을 더 바쁘게 움직여서 마른 빨래를 걷은 자리에 또다시 갓 세탁된 어르신들의 옷을 널어야한다. 따사로운 햇살에 뽀송뽀송하게 마른 빨래를 걷고 있자니 멀리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어르신이다.
“콩밭 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언제 또 배웠는지 새로운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 목소리에 위생팀의 손길도 흥이 돋는다. 그렇다, 베적삼이 흠뻑 젖는 어머니의 손길 같은 마음으로 품에 가득 빨래를 안아드는 마음이 한없이 풍요로워진다.
오늘 우리들의 땀방울과 어르신들의 웃음으로 하여금 따스한 사랑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일궈놓은 이 땅에서, 우리는 오늘처럼 또다시 내일을 살아갈 것이다. 사랑이 만발하고 행복이 영글어가는 이 축복의 터전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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